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명예 아리아인 (문단 편집) ==== 유대인 ==== [[막스 플랑크]]가 "똑똑하고 실력 있는 유대인들은 차별하지 말고 명예 아리아인처럼 대접해달라"고 히틀러를 설득했지만 "오히려 그래서 우리를 언제 배신할지도 모르는게 유대인일세"라며 무시당했다는 일화가 있으나, 유대인들조차도 명예 아리아인 취급을 받은 사례가 있다. [[헤르만 괴링]]이 "누가 유대인인지는 내가 결정한다."라고 한 적도 있고 무엇보다도 히틀러 본인도 어렸을 때 어머니를 치료해줬던 유대인 의사 에두아르트 블로흐(Eduard Bloch,1872~1945.1)[* 가난한 집안이 불쌍해서 치료비를 상당부분 면제해줬다고 하며, 히틀러는 "모든 유대인이 블로흐 같았으면 유대인 문제란 게 있을 수가 없지." 라는 말까지 했다고 한다.]와 1차세계대전때 본인이 속한 연대의 지휘관이었던 에른스트 헤스(Ernst Moritz Hess/1890~1983)를 특별히 봐준 적도 있다. 거기에 [[에밀 마우리스]](Emil Maurice,1897~1972) 또한 유대인 혈통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뮌헨 폭동]]에도 참가하는 등 나치 당원 초기부터 같이 지내던 친맥으로 [[하인리히 힘러]]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자기가 직접 명예 아리아인 칭호를 주면서 [[슈츠슈타펠]] 장교로 올려줬다. 마우리스는 2차대전이 끝나고 4년 징역형 및 벌금형을 받긴 해도 복역하고 나와 시계 가게를 차려 조용히 살다가 천수를 누렸다. 스테파니 줄리엔 리히터는 유대인이었지만 오스트리아 귀족인 홀렌호헤 고문과 결혼하고 나치 독일의 첩자로 협력해 1935년에 [[하인리히 힘러]]에 의해 명예 아리아인이 되었고, 1972년까지 천수를 누렸다. 작곡가 프란츠 레하르의 아내 소피 레하르는 결혼과 동시에 가톨릭으로 개종하기 전까지 유대인이었다. 히틀러는 레하르의 음악을 즐겼고 나치는 그것을 선전용으로 사용했다. [[요제프 괴벨스]]가 레하르를 대신해서 개입한 후, 부인은 레하르는 1938년에 결혼으로 "명예 아리안"의 지위를 얻었다. 이것은 확실히 그녀의 생명을 구했고, 전쟁 동안, 그녀를 추방하려는 시도가 적어도 한번 이루어졌지만 그녀의 지위 때문에 중지되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